
1793년과 1795년에 걸쳐 폴란드는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에 의해 나누어지면서 두 나라의 운명은 더욱 갈라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는 약 200년 동안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제국이 무너지면서 우크라이나는 독립의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우크라이나는 1917년 11월에 우크라이나 국민공화국을 선언하며 역사에 처음으로 '우크라이나'라는 이름을 등장시켰다.
하지만 이 독립의 열망은 오래가지 못했다. 사회주의 세력이 권력을 잡으면서 우크라이나의 민족주의 세력은 억압받게 되었고, 그들은 독립을 위해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패하면서 우크라이나의 독립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는 사회주의 세력이 이끄는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편입되었다.


이후 1922년에 우크라이나는 소비에트 연방의 초기 회원국으로 포함되며, 약 70년간 소련 체제 안에서 지내게 된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유는 복잡한 역사적, 정치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내의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들이 반러시아 감정을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는 현재의 갈등의 기초가 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남아 있는 트라우마 중 하나는 바로 1930년대에 발생한 홀로도모르라는 대기근이다. 당시 우크라이나는 소련의 식량 생산의 중요한 지역이었지만, 소련 정부의 강압적인 농업 정책과 자연재해로 인해 막대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에 시달리며 극단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었고, 이 사건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홀로도모르가 단순한 자연재해와 정책 실패에 따른 사건인지, 혹은 소련 정부가 의도적으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를 억압하기 위해 조장한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반러시아 감정을 심어주었고, 이들이 독립을 염원하는 이유가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크라이나의 독립운동이 다시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의 침공이 발생하면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더욱 강력한 저항 세력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들은 독일의 도움을 받아 독립국가를 세우려는 염원을 가지고 있었으나, 소련의 강력한 중앙정부와의 대항에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
결국,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은 오늘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복잡한 관계를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으며, 서로 다른 문화와 정체성이 분화되는 과정으로 이어졌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서부와 동부로 나뉘어 서로 다른 정치적 성향과 언어, 종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현대의 갈등에도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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